[영상] 가슴 아픈 볼리비아의 식민지 역사 '은산(銀山) 포토시' 제1화 : 광산을 탐방하다-세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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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가슴 아픈 볼리비아의 식민지 역사 '은산(銀山) 포토시' 제1화 : 광산을 탐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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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재문
댓글 0건 조회 98회 작성일 24-02-29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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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아픈 볼리비아의 식민지 역사 '은산(銀山) 포토시' 제1화 : 광산을 탐방하다 (02분30초)

[시웨(席玥), 신화통신 기자] "지금 저는 볼리비아의 포토시라는 곳에 나와 있습니다. 현지 가이드에 따르면 우리는 옆 광산에서 차로 1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제 바로 뒤에는 광부 시장이 있는데요, 이곳에서 일하는 광부와 그 가족들은 이곳에서 필요한 생활용품을 구매하고 있습니다."

[내레이션] 포토시는 원래 잉카 제국의 영토였으나 16세기 스페인에 빼앗겼다. 1545년 스페인 식민지 개척자들은 이곳에서 은광맥을 발견했다. 이곳의 채광업이 번창하기 시작하자 사람들도 대거 모였다. 포토시는 17세기 중반까지 약 16만 명의 인구를 보유한 대도시가 됐다. 은광이 발견된 산은 '세로 리코(Cerro Rico·부유한 산)'라고도 불린다. 그러나 '부유한 산'의 '부유함'과 포토시의 번영으로 이득을 본 것은 식민지 개척자뿐이었고, 현지 주민들은 착취에 시달렸다. 가이드인 조니 몬테스는 우리를 광산으로 안내했다. 그는 당시 식민지 개척자들이 '미타(Mita)' 제도로 현지 인디언들을 착취한 상황을 전해줬다.

[조니 몬테스, 현지 가이드] "원주민들은 스페인 왕실을 위해 일주일간 일하면서 왕실로부터 기본적인 생활용품을 공급받았습니다. 일주일 내내 일을 했는데 더욱 끔찍한 점은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잠조차 광산에서 잤다는 사실이죠. 이들은 할당된 작업량이 있어 완성하지 못하면 일주일 내내 광산에서 일을 해야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광부들의 일주일 생활, 이른바 '미타' 제도였지요."

[내레이션] 우리는 조니를 따라 광산의 운송 층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지면과 가장 가까운 곳으로 약 40m 깊이에 있다. 좁은 갱도에는 먼지가 자욱했다. 우리는 허리를 굽혀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자칫 부주의하면 안전모가 머리 위 벽면과 부딪쳐 '딱딱' 소리가 났다. 식민 지배를 받은 원주민 광부들이 이곳에서 어떤 생활을 했는지 상상하기 힘들 정도다. 은광으로 버틴 호황은 일시적일 뿐이었다. 스페인 식민지 개척자들이 떠났을 때 은광 자원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오늘날 포토시는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저개발 된 도시 중 하나로 남았다.

[조니 몬테스, 현지 가이드] "그들은(식민지 개척자) 이 산을 광업의 중심지로만 여겼습니다. 광물을 채굴하는 곳일 뿐이죠. 이 모든 채굴 작업은 다른 사람에게 제공하기 위한 것입니다."

[신화통신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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